포항이 알 이티하드를 2-1로 누르고 아시아 무대 정상에 올라섰다. 아시아 최고의 클럽 팀을 가리는 결승전답게 수준 높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졌는데, 승부를 가른 것은 결국 황재원과 김형일이 이끈 포항 수비진의 견고함이었다.

알 이티하드의 플레이메이커 모하메드 누르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전설적인 선수답게 마치 프란체스코 토티를 연상시키는 활약을 펼치며 포항을 괴롭혔다. 최전방에도 출중한 공격수들이 버티고 있는 알 이티하드였지만 황재원과 김형일의 끈질긴 커버플레이와 놀라운 태클 앞에서 쉽게 골을 득점할 순 없었다.

결국 포항은 세트피스에서 두 골을 잡아내면서 우승을 가져갔다. 노병준은 아스톤 빌라의 애슐리 영을 연상시키는 활기찬 움직임을 선보였고, 명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득점해냈다. 김형일은 부친상을 당한 슬픔을 이겨내고 헤딩으로 결승골을 작렬, 팬들에게 우승의 기쁨과 동시에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는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극적인 드라마, 명승부가 존재했지만 이 감동적인 순간들이 공중파 중계로는 전해지지조차 못했다. 케이블 중계였기 때문에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이나 시상식까지 즐길 수 있었던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판이 만들어져도 일반인들에게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시선을 세계 최대의 판 중 하나인 프리미어리그로 돌려보면, 이청용의 볼튼이 아스톤 빌라에 1-5로 무너졌다. 게리 케이힐과 제트 나이트가 구성한 중앙 수비는 포항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는데, 세 번째 골 이후부터는 아스톤 빌라 선수들조차 골을 넣고 킥킥거렸을 정도다.

볼튼은 이번 시즌 들어 무실점으로 마친 경기가 단 하나도 없는데 최근 세 경기에서는 연속으로 4골씩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이청용의 프리미어리그 무대 적응을 위해서 볼튼은 참 좋은 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챔피언십으로의 강등 가능성 또한 충분해 보인다. 게리 멕슨 감독은 재미있는 축구를 하고 지느니 재미없는 축구를 하고 이기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식으로 수비를 하면 재미가 있든 없든 경기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스톤 빌라는 동생을 잃은 루크 영이 복귀하면서 오랜만에 베스트 11을 필드에 내세울 수 있었다. 스티브 시드웰과 나이젤 레오-코커가 구성한 중원은 수비 시의 간격 유지가 인상적이었고, 제임스 밀너의 전천후 활약도 빛이 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왼쪽 풀백인 스티브 워녹도 승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상승세의 이청용을 막아내면서 클래스를 보여줬다.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은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가져간 주말이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축구는 고작 축구일 뿐이지만 그래도 때로는 벅찬 인생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Posted by yhfactor